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차우셰스쿠의 인구 정책 (문단 편집) == 부작용 == 먼저 법이 시행되면서 루마니아는 '''[[회광반조|첫 4년 동안 여성 1인당 출산율은 두 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증가는 일시적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충분한 경제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의사에게 뇌물을 건네 낙태 수술이 가능한 거짓 진단명을 받아냈다. 그리고 의사의 도움 없이 유산하기 위해 위험한 방법들을 택하기도 했다. 독극물을 복용하거나, 산파가 소독되지 않은 도구로 시술하거나, 부푼 배에 충격을 가하는 등... 태아는 물론이거니와 산모의 목숨조차 보장받지 못할 방법들이 횡행했다. 결국 출산율은 1985년에 법이 시행되기 전으로 복귀했다. 또 경제적으로 궁핍한 여성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낳은 아기들을 방치하거나 시설에 맡기는 아동 유기가 급증했다. 열악한 시설에서 아이들은 영양 결핍에 시달리게 됐고, 이는 영유아사망률 증가로 이어졌다. 심지어 '''유아사망률뿐 아니라 산모의 사망률[* 출생아 10만 명당 아이를 낳다 죽은 산모의 수]도 급증'''했다. 의사로부터 안전한 수술을 받을 수 없었던 임산부들은 불법 시술을 택했고 이로 인해 여러 합병증을 앓으며 매년 500여 명이 출혈과 감염으로 사망했다. 특히 [[낙태]]금지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1966년에 비해 1983년 루마니아 산모의 사망률은 7배 높아졌다. [[동유럽 혁명#s-2.6|1989년 12월 혁명]]으로 낙태금지법이 철폐되자 1990년 루마니아 산모의 사망률은 이전의 절반으로 감소했다. 특히 부모가 키운다 해도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사이 나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학대]]와 무관심에 방치되어 비참한 삶을 살았고 후에 이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지도 않는데 태어나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지게 되어 사회적 문제로 성장하였다. 무엇보다 보육 시설과 육아 시설, 소아과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 애만 낳다 보니 영아 사망률이 145%나 증가하여 실질적인 인구증가율은 희생에 비해 높지 않았다. 이에 차우셰스쿠는 실질적인 보건 환경을 개선시켜 전반적인 상황의 호전을 유도하지 않고 단순히 눈에 보이는 수치만을 낮추는 무식하고 일차원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바로 '''생후 한 달이 지난(=죽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들에게만 [[출생신고]]를 받아주는 것이다.''' 정작 사망하는 아이들의 수는 똑같은데 살아남은 아이들만 출생신고를 받아주니 금방 죽는 아이들은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사망신고도 되지 않았고, 사망자들의 사망신고는 안 되면서 살아남은 아이들의 출생신고만 받아주니 문서상의 사망율 숫자는 줄어든다는 쓰레기만도 못한 역발상을 정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또한 부모 입장에서는 출생 신고가 안 된 만큼 더 낳아야 하므로 그 부담이 더욱 더 악화되었고 어쩔 수 없이 수를 채우기 위해 아기를 낳느라 실제 인구 수는 더 증가했다. 이렇게 보건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루마니아는 국민의 특정 연령층 전체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게 되었다. 장애아로 태어났다거나 부모가 키울 상황이나 능력이 안되는 등의 이유로 시설로 버려지는 아이들도 늘게 되었고 보호시설에 보내진 아이들은 방치되어 쇠약해지거나 죽었다. 게다가 차우셰스쿠는 쇠약해진 아이들에게 체력을 강화하겠단 목적으로 일괄적 수혈을 지시하였는데 문제는 검사를 제대로 안 해서 '''이 아이들에게 대규모로 [[에이즈]]를 감염시키는 등''' 악순환만 계속 이어졌다. 세월이 흘러 태어난 많은 아이가 어느덧 성인이 되었지만 대부분 성장 상태가 건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세대는 낮은 지능과 건강도를 보이고 대인관계에 문제를 보이거나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했으며 다른 세대보다 폭력성과 범죄율이 높았다. 적절한 일자리가 제공되지 못해 청년 실업자가 폭증했고 불안과 불만과 불행이 쌓여 결국 이 세대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폭발했고 이 세대의 주도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으며 그 시위가 차우셰스쿠 정권을 무너트렸다. 결국에는 무리한 인구정책이 자기를 몰아낼 시위대를 직접 키운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차우셰스쿠에게 가장 충성했던 [[세쿠리타테]] 역시 이 세대에서 차출된 아이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세쿠리타테에 입대한 고아들도 정규군보다 더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야 했다. 게다가 민주화 직후에는 '차우셰스쿠의 충견들'이란 이유로 시민들 혹은 정규군들에게 린치당하거나 변화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범죄자가 되던지, 아니면 자살하는 등 대다수는 말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일부 운 좋은 소수만이 민주화 이후에 정상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어느 쪽에 속하던 차우셰스쿠의 인구 정책으로 태어난 고아들은 대부분 인생이 순탄치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도 루마니아에서 이 문제는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우도 받지 못하고 [[인신매매]] 브로커들을 통해 루마니아 밖으로 팔려가 [[막노동]], [[성매매]], [[소년병]] 등의 환경에 노출되거나 최악의 경우 악질 [[아동포르노]] 업자에게 잡히는 경우도 있다. 한때 구소련 [[레드 마피아]]와 [[튀르키예 마피아]], [[네덜란드]] [[페노제]]의 주 수입원이 이들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을 거래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대다수가 절대빈곤과 [[마약]], [[에이즈]]에 노출되어 있으며 각종 범죄에 연루되어 인식은 더 안 좋아지는 편이다. 수도 부쿠레슈티에는 이 차우셰스쿠의 아이들 출신들이 모여 사는 지하 마을도 있다고 한다.[* 루마니아도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오래된 하수도는 지하도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걸 개조한 것이다.] 아무리 좋게 봐 줘도 머리가 인체 밖으로 [[쇼생크 탈출]]을 감행한 것 같은 이 인구 정책은 루마니아 자체의 국가 브랜드까지 낮춰서 루마니아는 [[냉전]]기에도, 그 이후에도 한동안 서구권 국가들은 물론 소련, 폴란드, 동독, 유고슬라비아 같은 같은 공산국가들 사이에서도 비웃음거리였으며 공산권 붕괴 후의 [[폴란드]], [[독일]], [[러시아]] 등지의 주 놀림거리가 되어야 했다. 한국에는 현재까지도 루마니아가 못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서유럽에도 루마니아인들이 넘어와 난동을 피우는 게 현실이다. 거기에 이 정책의 여파로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일부는 무려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까지 수출되어 강제적으로 [[소년병]]이 되어 어린 나이에 전쟁의 참상 속으로 던져지게 되었다.''' 한마디로 대책 없는 무의미한 출산 정책이 불러온 참극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